버들치는 상류에 사는 민감종인가?
“버들치는 상류에 사는 민감종인가?”
1. 프롤로그
얼마전 어살이에서 ‘버들치가 민감종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은 크게 2가지의 생각해볼 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데, 아래에 그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2. 버들치가 사는 ‘상류’란 무엇인가?
시작하기에 앞서, 방사선 피폭의 정도를 논하면서 방사선량의 단위인 ‘시버트’를 논하지 않을 순 없듯이, ‘상류’와 ‘하류’를 논하면서 무엇이 상류인지 그 기준을 논할 필요가 우선 필요해 보입니다. 누군가 버들치를 어떤 하천 구간에서 채집하고 “나는 상류에서 버들치를 채집했다”고 주장하고 누군가 같은 장소에 방문해서 버들치를 채집하고서 “나는 버들치를 중류에서 채집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요. 똑같은 하천 구간을 보고 누군가는 상류로 누군가는 중류로 심지어 누군가는 하류로 본다면 그것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인 개념이지요. 실제로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길이가 짧은 어떤 하천의 바다에 인접한 구간을 저는 ‘상류’라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곳에선 버들치도 채집됨) 혹자는 그 환경이 바다에 거리가 인접했으니 ‘하류’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상류인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물고기가 사는 환경에 대해 논하는데 너무 엄밀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엄밀함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버들치의 이러한 판단이 “버들치가 민감종”이라는 범주에 들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하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하천의 물리적 구조에 대해 잘 아시는 전문가 분의 안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3. 내성도 길드란 무엇인가?
주제를 바꾸어, 버들치가 환경변화에 민감한 종이라는 판단을 누군가 내렸다면 그 판단을 위한 수치화된 근거를 필요로 합니다. 민감종은 ‘내성도 길드(tolerance guild)’라는 개념에 속한 범주입니다. 저는 내성도 길드라는 개념의 의미, 민감종 선정의 기준, 그리고 버들치가 민감종이란 기준에 얼마나 부합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출판되는 어류상 논문들을 보면 이 개념을 활용하며 하천의 건강성을 논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들은 “이 물고기는 민감종이고 그걸 기준으로 이 환경의 건강성을 평가할 수 있다”라는 목표로 내성도 길드를 활용합니다. 심지어 이 개념을 활용한 평가가 하천 관리 정책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제언까지 곁들입니다. 저는 더 궁금해졌습니다. 일단 생물종의 특성을 규정한 개념은 생태학과 진화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선 이런 개념은 굉장히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서론(introduction)에 그 생물 종의 특성을 요약 정리하곤 합니다. 그 생물 종의 특성을 요약해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면, 굳이 그 종의 특성을 장황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타당하다면 이 개념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과연 이 내성도 길드의 개념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내성도를 나누고 종들의 범주를 규정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논문들을 들여다 봤습니다.
내성도 길드를 키워드로 검색된 국내 논문들은 어느 하나의 참고문헌을 인용하며 내성도 길드를 사용하고 그 개념을 한국의 물고기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헌은 바로 미국 EPA(환경보호국)에서 1989년에 발행한 보고서입니다.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몇 가지 종들을 규정한 몇 편의 보고서가 함께 인용되고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이 보고서들에는 한국에 사는 물고기들의 목록이 없다는 점 입니다. 한국의 물고기들이 환경변화에 민감한지 아닌지를 논하면서 그 인용된 기준에 어떤 종이 민감한 종으로 규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어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제시된 기준으로 어떤 물고기가 그 규정에 부합되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볼 수 없었습니다. 비유하자면, 크기가 10cm 미만이면 소형종이라 규정되어 있는데, 실제 그 기준에 대응되는 측정치를 볼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이상하지요. 버들치가 민감한 종이다 아니다라는 개념을 논한 문헌에 버들치가 어느 정도 내성 범위를 갖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버들치의 용존산소량 내성 범위가 몇 ppm 구간인지 알아야 하는 것인데, 그 내성 범위에 대한 기준이 될만한 데이터는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한국에 분포하는 종들의 내성도가 어떻게 평가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갖고 계신 분이 계시면 공유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잠정적으로 내성도 길드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위와 같은 이유로 보류하고자 합니다.
4. 생물의 내성 범위에 관하여
그리고 이것과 별개로 생물 종의 내성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폭넓은 집단들의 데이터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종의 생태적 지위는 집단에 따라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 생태학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생물의 집단별 차등적 적응에 대한 많은 사례를 접하셨을 것 입니다.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그 형태와 생리적 능력이 달라지는 가소성(plasticity)이 나타나곤 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종 내에서 어느 집단에서는 내성 범위가 크더라도 어느 집단에서는 내성 범위가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특정한 집단만을 근거로 어떤 종의 내성 범위를 규정짓는다면, 편향된 결과를 얻게 된다고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원류는 피부에 독성을 갖고 이 독성의 정도는 집단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영원류의 포식자가 독에 저항하는 능력이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독에 저항하는 천적과 공진화해온 영원 집단은 강한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 영원을 독성의 정도를 기준으로 강독성 종, 약독성 종이라고 분류하고 그 종의 특징을 약독성 지역만을 기준으로 약독성으로 분류한다면 그것은 타당한 것일까요? 영원류의 독성은 종 수준의 특성이 아니라 집단 수준의 특성인데도요?
물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집단 별로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진화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어려운 말로 지역적응(local adaptation)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종이 넓은 분포 범위를 갖고 각 분포지역 마다 서로 다른 환경을 갖고 있다면, 각 집단들은 그 환경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특성들을 갖도록 자연선택의 압력이 가해집니다. 결국 그 종은 세대를 거치며 집단 별로 서로 다른 내성 범위를 갖게 되겠지요.
단지 이론일 뿐일까요? 실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육봉화된 은어 집단과 연안과 민물을 오가는 은어 집단의 염분 내성은 어떨까요? 누군가 육봉화된 은어만을 기준으로 “은어는 염분저항성이 낮은 염분 변화에 민감한 종이다” 라고 규정한다면 그 규정은 신뢰되어야 할까요?
위와 같은 이유로 생물의 내성도를 분류하기 위해서는 종 내 집단별로 내성 범위에 대한 사전 연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역별로 각 환경변수별로 얼만큼의 내성 범위를 갖는지 실내 실험과 현장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지요. 버들치에 대해 이런 연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수온은 몇 도에서 몇 도 까지 견디고 집단 별로 얼마나 이 견디는 범위는 다르고, 용존산소량은 얼만큼의 범위에서 생존가능한지에 대한 연구는 없습니다 (2019년 3월기준). 내성도 기준을 선정하고 그것으로 환경을 평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 평가가 정책에도 영향을 준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제시할 데이터가 부재한다는 사실은 현재로선 분명해 보입니다.
5. 사족
한편, 내성도 길드에 관련된 논문들을 몇 편 보면 이 척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고기로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평가하겠다는 목적으로 제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 기준이 정말로 필요한걸까요? 실은 아래의 간단한 원칙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 그 하천에 자연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다양성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가?
- 물리, 화학적 환경변수가 기존에 서식하는 종들의 생존에 치명적일 수준으로 변했는가?
6. 에필로그
이상으로 글 맺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어 감사드리며, 자유로운 토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단, 위의 글을 충분히 읽어보시고 토론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질문이나 반박은 상호 소모적이기 때문에 정중히 사절하겠습니다.